삿포로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는 법 – 감성 여행자의 하루
낯선 길에서 나를 만나는 시간
여행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여행을 "계획된 일탈"이라 말하고, 또 어떤 이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표현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여행은 조금 다르다. 여행은 의도적으로 길을 잃는 것, 특히나 삿포로의 골목길 같은 낯선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삿포로는 홋카이도의 수도로, 널찍한 도로와 눈 덮인 공원, 그리고 화려한 오도리 공원 축제 등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삿포로는 관광 책자에 적히지 않는 곳이다. 오히려 지도엔 표시되지 않은 구불구불한 골목길, 작고 조용한 카페, 그리고 골목 담벼락에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 그런 곳들이 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방문'이 아니라, 하루를 온전히 삿포로의 일상에 스며들며 보내는 것이었다. 계획된 루트도, 정해진 일정도 없었다. 그저 숙소를 나서, 발길이 이끄는 대로 걷고, 눈에 띄는 카페에 들어가 앉으며, 스쳐가는 사람들과 나누는 짧은 눈인사에 미소 짓는 하루.
그리고 그 하루는, 예상치 못한 골목 어귀에서 시작되었다. 지도조차 필요 없는 시간. 카메라 렌즈 너머로 풍경을 담기보다, 내 눈과 마음으로 낯선 도시의 숨결을 느끼는 법. 오늘 나는 삿포로의 골목에서 길을 잃는 법을 배운다.
삿포로 감성 골목 탐방기
1. 스스키노를 지나, 조용한 마루야마 골목으로
삿포로의 번화가 스스키노에서 시작된 하루. 화려한 네온사인을 뒤로하고, 조용한 마루야마 지역으로 향했다. 이곳은 마루야마 공원과 신사로 유명하지만, 내가 찾은 건 그 주변의 골목길이다.
좁은 도로 옆엔 오래된 2층 가정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작은 화단에 핀 튤립과 팬지들이 인사를 건넨다. 담벼락엔 아이들이 그린 벽화가 흐릿하게 남아 있다. 이곳은 관광객보다 현지인들의 삶이 배어 있는 공간이었다.
📍 추천 장소: Café Morihico (마루야마점)
- 위치: 마루야마 고등학교 뒤편 골목 안
- 특징: 오래된 민가를 개조한 북유럽풍 감성 카페. 커피 향이 골목을 감싼다.
- 후기: 창가에 앉아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마신 라떼 한 잔은, 어떤 고급 디저트보다 더 따뜻했다.
2. 시로이 코이비토 공장 뒤편의 낡은 담벼락
삿포로 명소 중 하나인 시로이 코이비토 파크. 많은 여행자들이 초콜릿 체험을 위해 찾는 곳이지만, 나는 그보다 공장 뒤편의 낡은 골목길에 더 이끌렸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담벼락과, 겨울 햇살에 반사되는 얼어붙은 창문들. 그 옆으로 이름 모를 공방이 조용히 문을 열고 있었다. 들어가보니, 지역 작가의 손으로 만든 북유럽풍 장식품과 엽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 추천 장소: 공방 Aoitori
- 위치: 시로이 코이비토 공장 북문 인근 골목
- 특징: 손뜨개, 도자기, 유리 소품 등 감성 수공예품 전문 공방
- 후기: 주인 아주머니의 따뜻한 차 한 잔과, 직접 만든 자그마한 고래 모양 브로치 하나가 여행의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3. 홋카이도 대학 북문 주변, 계절이 스며든 골목
삿포로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가진 홋카이도 대학. 하지만 정문보다 북문 주변의 골목길이 더 매력적이었다. 여기는 마치 시간의 속도가 느려지는 구역 같았다.
벚꽃이 피기 시작한 캠퍼스 가장자리, 벽돌 주택들이 조용히 줄지어 서 있고, 자전거를 끌고 지나가는 학생들. 그런 풍경 속에서 나는 또 하나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장소를 만난다.
📍 추천 장소: 북문 책방 LENTO
- 위치: 홋카이도 대학 북문에서 도보 3분
- 특징: 헌책과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북카페
- 후기: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라고 쓰인 포스트잇이 책장 사이에 꽂혀 있었다. 그날 내 마음을 말없이 어루만져주었다.
4. 삿포로 맥주 박물관 뒤편, 붉은 벽돌 사이에서
관광객들이 붐비는 삿포로 맥주 박물관과는 달리, 그 뒷편 골목은 한적하고 따뜻하다. 오래된 벽돌 창고들을 개조한 갤러리와 소규모 레스토랑, 공장 굴뚝 사이로 노을이 드리운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 추천 장소: Kitchen & Space NAGAME
- 위치: 삿포로 맥주 박물관 뒷편, 구 공장 창고 내
- 특징: 로컬 재료를 활용한 창작 요리 레스토랑. 작은 전시회도 병행.
- 후기: 저녁노을이 스며든 창가에서 먹은 감자스프와 연어샐러드는 이 골목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한 끼였다.
5. 눈 쌓인 골목길의 마지막, 야경과 만나다
어둠이 내리자 삿포로의 골목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가로등 불빛이 눈 위에 반사되고, 길가에 줄지은 식당과 이자카야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소리. 여정의 마지막은 평범한 골목 식당에서 따끈한 스프카레로 마무리했다.
📍 추천 장소: Soup Curry GARAKU
- 위치: 오도리 공원 근처 골목 안
- 특징: 삿포로 대표 스프카레 맛집. 퇴근한 현지인들이 즐겨 찾음.
- 후기: 매콤한 국물 속에 담긴 푹 익은 채소와 닭고기의 조화.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따뜻하게 마무리되었다.

길을 잃는다는 것의 의미
삿포로의 골목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지 이동하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이자, 낯선 도시가 주는 위로를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화려한 관광 명소나 유튜브 인기 장소가 아니어도 좋다. 작은 카페에서 마주친 웃음, 골목 끝에서 만난 창작품, 담벼락에 피어 있는 작은 꽃 한 송이. 이런 것들이 바로 여행자의 마음을 감싸 안는다.
오늘 나는 삿포로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를 찾았다. 완벽한 하루였다.
삿포로를 찾는 누구라도 한 번쯤은 '길을 잃는 여행'을 해보길 바란다. 그 길의 끝엔, 언제나 따뜻한 풍경과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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